모임에서 준비 일이 한 사람에게 몰리는 이유 (역할 분담, 책임감, 공정함)
함께하는 모임이라도 준비하는 일까지 저절로 나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장소를 예약하고, 누군가는 일정을 확인하며, 또 누군가는 돈을 관리합니다. 처음에는 편한 방식으로 맡았던 일이 계속 같은 사람에게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저는 모임에서 돈 관리를 맡는 편입니다. 한 사람이 여러 일을 맡으면 부담이 커질 것을 알기에, 일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즐거운 모임을 이어가려면 무엇을 할지 정하는 것만큼, 준비하는 일을 어떻게 나눌지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함께하는 일에서도 역할 분담이 필요한 이유
저는 모임을 이끌거나 예약과 일정을 맡기보다, 정해진 역할에 참여하는 편입니다. 그중 제가 맡는 일은 돈 관리입니다. 모임에는 눈에 잘 보이는 일도 있고, 참여한 사람들의 관심을 크게 받지 않는 일도 있습니다. 장소를 정하는 일과 돈을 관리하는 일은 서로 다르지만, 둘 다 누군가 맡아야 모임이 진행됩니다. 저는 이런 일이 한 사람에게 몰리지 않도록 최대한 신경 쓰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잘한다고 해서 다른 역할까지 계속 맡게 된다면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공동 작업에서 개인의 노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본 연구가 있습니다. 카라우와 윌리엄스는 1993년 78개 연구를 종합해 ‘사회적 태만’을 분석했습니다. 이는 혼자 작업할 때보다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작업할 때 개인이 들이는 노력이 줄어드는 현상을 뜻합니다. 다만 모든 사람이 집단에서 덜 노력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자신의 기여를 평가할 수 있는지,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과제가 얼마나 의미 있는지 등 여러 조건에 따라 결과가 달랐습니다. 인원이 많다는 사실만으로 역할 분담이 잘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 연구만으로 특정 모임에서 일이 몰리는 원인을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역할이 처음부터 정해지지 않았거나, 누가 무엇을 맡았는지 서로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경험이 없어 선뜻 나서지 못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은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참여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무책임하다고 판단하기보다,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부터 함께 확인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예약, 일정 안내, 돈 관리처럼 일을 구체적으로 나누면 각자가 참여할 방법을 찾기 쉬워집니다. 역할 분담은 사람을 평가하기 전에 모임의 준비 과정을 살펴보는 일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여러 역할이 겹치면 부담이 커지는 이유
제가 여러 일을 한꺼번에 맡는다면 시간과 책임,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동시에 신경 쓰게 될 것 같습니다. 이는 실제로 여러 역할을 맡아 힘들었던 경험이라기보다, 그런 상황을 생각했을 때 예상하는 부담입니다. 준비에 필요한 시간을 마련하는 것뿐 아니라, 결정이 잘못되지는 않을지 걱정할 수 있습니다. 일정이나 장소처럼 사람마다 원하는 것이 다른 일이라면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도 필요합니다. 해야 할 일의 개수가 늘어나는 동시에, 생각하고 판단해야 할 내용도 많아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행을 준비하는 상황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숙소를 예약하는 일에는 가격과 위치를 확인하는 과정이 따릅니다. 일정을 정하려면 이동 시간과 참여자들의 사정을 살펴야 합니다. 돈까지 관리한다면 비용을 모으고 사용 내역을 정리하는 일도 더해집니다. 이는 제 경험을 옮긴 사례가 아니라, 서로 다른 역할이 겹칠 때의 부담을 설명하기 위한 예시입니다. 일을 몇 개 맡았는지만으로 수고를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한 가지 역할이라도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여러 사람과 연락해야 한다면 부담이 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준비한 일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좋지 않으면 서운할 것 같습니다. 시간을 들여 맡은 일을 했는데 그 수고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준비한 사람의 결정에 모두 동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쉬운 점을 말하는 일과 준비한 사람의 수고를 인정하는 일은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바꾸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구체적인 의견을 내고, 가능한 일을 직접 맡아보는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결과에 대한 반응만 전하기보다 다음 준비에 어떻게 참여할지 이야기한다면, 한 사람이 계속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을 나누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잘하는 일을 맡고 돌아가며 부담을 나누는 방법
저는 각자 잘하는 일을 우선적으로 맡고, 서로 의견을 조율해 돌아가며 맡는 방식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익숙한 일을 맡으면 준비가 수월할 수 있지만, 잘한다는 이유로 같은 사람이 계속 담당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역할을 바꿀 때도 모두에게 같은 일을 순서대로 맡기기보다, 가능한 시간과 맡을 수 있는 범위를 먼저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역할 전체를 바꾸기 어렵다면 일부를 함께 맡는 방법도 있습니다. 한 사람이 예약을 맡더라도 다른 사람이 후보 장소를 찾아보는 식으로 수고를 나눌 수 있습니다.
하킨스와 잭슨의 1985년 연구에서는 네 사람이 함께 아이디어를 내는 과제를 통해 개인의 기여와 평가 조건을 살펴봤습니다. 개인별 결과가 구분될 뿐 아니라 동료의 결과와 비교해 평가할 수 있다고 여기는 조건에서 참여자들은 더 많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개인의 결과를 구분하는 것만으로는 같은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는 일상 모임에서 역할을 돌아가며 맡는 방법을 직접 검증한 연구는 아닙니다. 다만 공동 작업에서 자신의 기여가 어떻게 드러나는지에 따라 참여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모임에서도 누가 어떤 일을 맡는지 서로 알 수 있도록 정리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공정한 역할 분담은 각자의 사정을 듣고, 부담이 계속 한쪽에 쌓이지 않도록 조정하는 방식입니다. 이번에 시간이 부족한 사람은 맡을 수 있는 작은 일을 찾고, 다음 모임에서는 더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미 맡은 일이 많다면 추가 역할이 어렵다는 뜻도 편하게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탁을 거절할 때 느끼는 미안함은 기존 글인 인간관계 거절 심리에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저는 제가 맡은 돈 관리에 참여하면서, 다른 사람의 역할에도 수고가 따른다는 점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서로 잘하는 일을 활용하되 필요할 때 다시 조율할 수 있는 모임이라면, 준비하는 사람과 참여하는 사람 모두 조금 더 편안해질 것 같습니다.
※ 이 글은 다음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Karau, S. J., & Williams, K. D.(1993). 공동 작업에서 개인의 노력이 달라지는 조건을 종합한 연구. Social Loafing: A Meta-Analytic Review and Theoretical Integration
Harkins, S. G., & Jackson, J. M.(1985). 개인별 기여의 구분과 평가 조건이 공동 과제 참여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연구. The Role of Evaluation in Eliminating Social Loaf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