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사람과 말투가 닮는 이유 (행동 모방, 카멜레온 효과, 친밀감)
저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공통의 관심사로 만난 것도 아니고, 제가 선택해서 가까워진 관계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같은 환경에 있어 자주 얼굴을 마주쳐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대화가 끊기면 특별히 궁금한 것이 없어도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찾았습니다.
반대로 가족이나 오래된 친구와 있을 때는 다릅니다. 대화가 한동안 끊겨도 굳이 새로운 이야기를 찾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침묵을 견디기 어려워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생각도 조금 달라졌습니다. 같은 침묵인데도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친하지 않은 사람과의 침묵은 생각보다 길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대화가 잘 이어질 때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야기가 끊기면 상대의 반응을 살피게 됩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라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은 기분도 생깁니다. 저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자주 얼굴을 마주쳐야 하지만 특별히 친하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였습니다. 서로 공통의 관심사가 있어 만난 관계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계속 아무 말 없이 있기도 민망했습니다. 결국 “오늘 날씨가 많이 춥네요” 같은 아주 가벼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정말 날씨가 궁금했다기보다 그 순간의 공백을 자연스럽게 넘기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심리학에서는 대화의 내용뿐 아니라 대화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이어지는지도 사람 사이의 느낌과 관련될 수 있다고 봅니다. Koudenburg와 동료들의 연구에서는 대화의 흐름이 잠시 끊겼을 때 소속감이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느낌 등이 낮아지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연구에서는 약 4초 정도의 짧은 침묵도 대화의 흐름을 방해하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살펴봤습니다. 물론 일상에서 4초 동안 말하지 않았다고 누구나 불편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와의 관계도 다르고 상황도 다릅니다. 다만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질 때는 ‘우리 대화가 잘되고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갑자기 흐름이 끊기면 상대도 지금 어색해하는지 신경 쓰일 수 있습니다. 이럴 때 날씨나 음식 같은 가벼운 이야기가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깊은 이야기를 하기 위한 대화가 아니라 서로의 어색함을 조금 줄이는 역할을 합니다. 저는 예전에는 이런 공백을 반드시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침묵 자체보다 그 침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더 신경 썼던 것 같습니다.
가족이나 오래된 친구와 함께 있을 때는 상황이 다릅니다. 대화가 끊겨도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급하게 찾지 않습니다.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한동안 아무 말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각자 휴대전화를 보거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도 상대가 나를 불편해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 이유 중 하나가 서로의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래된 관계에서는 상대가 평소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습니다. 오늘 피곤해 보인다면 굳이 계속 말을 걸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조용히 있고 싶은 날도 있다는 것을 압니다. 서로 각자의 시간을 이해해주는 느낌도 있습니다.
2024년 Motivation and Emotion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연인 관계에서 나타나는 침묵을 그 이유에 따라 나누어 살펴봤습니다. 네 번의 연구 결과, 서로 편안하게 공유하는 자발적인 침묵은 긍정적인 감정과 관계의 친밀감에 연결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반대로 압박을 느껴 말을 하지 않거나 갈등 때문에 생긴 침묵은 부정적인 감정이나 낮은 관계 만족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같은 침묵이라도 이유가 다르면 느낌은 전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가족과 편안하게 앉아 아무 말 없이 TV를 보는 시간과 화가 나서 서로 말을 하지 않는 시간은 모두 침묵입니다. 하지만 두 상황을 같은 침묵이라고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느끼는 기대와 적당한 거리가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이전 인간관계 화내는 심리 글에서도 살펴보았습니다. 가까운 관계에서는 계속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큼 상대가 조용히 있고 싶은 시간을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편안한 침묵은 좋은 관계를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닙니다. 다만 오래 알고 지낸 사람과는 대화가 잠깐 멈춰도 그 이유를 나쁘게 해석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 말이 없는 순간에도 관계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침묵을 지금보다 훨씬 어색하게 느꼈습니다. 대화가 끊기면 어떻게든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조금 어색할 것 같은 자리가 예정되어 있으면 일부러 약속 시간보다 늦게 맞춰 간 적도 있습니다. 함께 있어야 하는 어색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상대가 실제로 저와의 침묵을 불편해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저 혼자 ‘계속 대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별로 궁금하지 않은 질문을 하거나 억지로 이야기를 이어갈 때도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 부분에서는 조금 유연해진 것 같습니다. 이제는 대화가 잠깐 끊겼다고 해서 바로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잠시 조용히 있어도 괜찮습니다. 상대가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냥 특별히 할 말이 없는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침묵이 어색할 때는 가벼운 대화로 분위기를 바꿀 수도 있습니다. 날씨나 음식, 지금 함께 있는 장소처럼 부담 없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상대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잘 들어주는 것도 방법입니다. 하지만 대화를 이어가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침묵을 다룬 최근 연구에서도 말하지 않는 행동에는 하나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관계와 상황, 침묵하게 된 이유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침묵이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상대가 나를 싫어하거나 대화가 실패했다고 판단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이제 모든 공백을 말로 채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편안한 사람과는 조용히 있는 시간을 그대로 둡니다. 아직 친하지 않은 사람과 대화가 잠시 끊겨도 조금 기다려봅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것이 생기면 그때 다시 말을 시작하면 됩니다. 예전에는 침묵을 없애야 할 어색한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침묵이 어색할 수는 있지만 모든 공백을 억지로 말로 채울 필요는 없습니다. 상대와의 관계와 상황에 따라 잠시 조용한 시간도 대화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이 글은 다음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